2010년 2월 28일 일요일

뻥과 구라라도 좋다 이야기가 없는 기업은 망한다

김정운 교수 명지대학교· 문화심리학 | 2009/09/26

웰치·잡스… 위대한 기업엔 이야깃거리가 있는 법
광고는 고객에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전략이다
직원들이 자기 회사에 대해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나…그렇다면 그 기업은 진짜 잘나가는 기업이다


 
우리는 이야기하려고 산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로 확인된다는 뜻이다. 사회적 지위나 내가 받는 연봉은 내 존재의 본질과는 상관없다.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된다. 그리고 내가 죽는 순간 끝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묵한 한국 남자들은 더 이상 멋진 '싸나이'가 아니다. 삶이 하나도 재미없어, 해야 할 이야기라고는 전혀 없는 한심한 사람일 따름이다. 삶이 재미있는 사람은 말이 많다. 아무리 과묵한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반짝거리며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끼어들고 싶어한다.

낚시꾼들을 보라. 고기 잡는 이야기라면 술 한 잔 안 마시고 밤새 할 수 있다. 놓친 고기는 다 팔뚝만 하다. 골프가 재미있는 이유도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가 술 안 마시고, 여자 없이 4시간 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골프 이야기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즐기는 스포츠, 영화, 여행은 모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대사적 변화를 문화심리학에서는 '이야기로의 전환(narrative turn)'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기업에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잭 웰치의 GE가 그랬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 대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반복되며 부풀려진다. 이야기가 없는 기업은 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현대에는 정주영 회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삼성에는 이병철 회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포스코에는 박태준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뿌듯한 마음으로 소비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불안한 이유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 나라에 대한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데, 어찌 내 나라가 자랑스러울까. 한국 기업의 위기도 이야기 부재(不在)에서 비롯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가슴 찡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했다. 더 이상 창업주의 영웅 신화를 이야기하며 지탱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기업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회사, 내가 속한 공동체에 관해 그 어떤 즐거운 이야기도 할 수 없다면, 이건 아주 심각한 위험 신호다.

'내 회사, 내 공동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광고는 고객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20세기 후반부터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생산자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사회로 바뀌면서 고객들의 이야기를 돈 주고 사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광고가 갈수록 눈길을 끌며 다양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객들이 그 기업에 관해 할 이야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고객들의 이야기가 없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아무리 현재의 연 매출이 높아도 곧 무너지게 되었다. 더 이상 고객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잊고 있는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내부 고객, 즉 직원들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업이 외부 고객들을 위한 이야기 생산에는 그토록 투자하지만 내부 고객, 즉 직원들이 나눌 이야기에는 별 관심 없다. 기껏해야 회식이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 생각해보자.

회사의 발전을 위한 이야기는 건배 한 번으로 끝이다. 폭탄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 나눌 이야기는 없어진다. 상사는 사무실에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술 취하면 어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난 정말 증오한다.) 이튿날, 직원들이 회사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보자. 기껏해야 누가 폭탄주를 몇 잔 더 마시더라, 누가 술 취해 무슨 실수를 했더라, 밤에 집에 오는데 땅바닥이 벌떡 일어나더라,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전부다.

정말 좋은 회사에는 스토리가 있다. 직원들이 할 이야기가 많아야 위대한 기업이다. 직원들이 회사에 관해 끊임없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기업이 진짜 잘나가는 기업이다. 경기에 따라 기업의 매출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직원들이 자랑스러워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를 나는 '스토리텔링 경영'이라 부른다.

내 나름의 전문 용어로는 'B&G 경영', 즉 '뻥&구라 경영'이라고 정의한다.

B&G는 Big&Great의 약자이기도 하다. 크고 위대한 기업에는 항상 즐거운 이야기, 즉 뻥&구라가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포스코가 그 비싼 본사 건물의 4층 전체를 직원들의 놀이와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직원들이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쉴 수 있고, 피곤하면 잠시 낮잠도 잘 수 있다고 한다. 책과 음료수도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작은 실내 정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 정말 잘하는 일이다.

드디어 회사에서도 즐거운 이야기가 공유되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화장실 앞에서, 흡연실에서, 자판기 앞에서나 나눌 수 있던 이야기를 이제 내놓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B&G 경영'의 시작이다. 즐거운 이야기, 가슴 벅찬 이야기가 살아 있는 회사가 '내 회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회사에 관해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는 직원들은 오직 '남의 돈 따먹으러' 회사에 다닐 뿐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당신 회사의 직원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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